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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위기극복과 경영철학의 스토리

Sumin Lim 2011. 3.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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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위기극복과 경영철학의 스토리

 

일본에서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노스케가 제시하고 있는 몇 가지 키워드 들을 소개하자면 ‘해결책은 있다, 비관하지 말고 경영이념을 지켜라, 책임은 내게 있다. 불황일수록 인재를 양성해라’ 등 그의 일관된 철학과 신념들로, 전후 불황, 오일쇼크 등 일본이 겪은 수 차례의 경영위기와 불황시대를 극복한 지혜가 숨어있다

 

 

 

 

■ 출생과 성장 - 가세의 몰락과 함께 시작한 고용살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894년 와카야마의 유복한 농가에서 3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미곡투기 실패와 함께 집안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가난한 집안 덕에 가족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고 두 형과 누나 한 명이 유행성 감기로 숨을 거두었다.
이런 어려운 집안 탓에 고노스케는 소학교를 중퇴하고 10살의 나이에 가게의 고용살이를 하러 오사카로 떠난다. 그 당시의 고용살이는 어린 시절부터 일을 배우는 조건으로 일종의 종살이와 같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겪기에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용살이의 고노스케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다. 바로 전기사업으로의 이직이었는데 그는 오사카의 전차를 보면서 전기산업의 발달을 예감했고 1910년 오사카전등 주식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업무는 ‘기타 종업원’이라는 가장 낮은 직급으로 배선 공사를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탁월한 성실성과 업무에 대한 자세로서 승진을 거듭해서, 1917년 그는 내선담당자에서 검사원으로 승격하였고 조직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한편, 그는 평소에 소켓 개량에 관심이 많아서 시제품을 만들어 회사간부에게 자주 보여줬는데, 그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계속 무시당하고, 이를 계기로 고노스케는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독립 후 각고의 노력 끝에 1년 만에 월 5,000개의 생산과 20여명을 종업원을 둔 회사로 마쓰시타 전기를 성장시켰고,

독립 6년째에는 소켓생산에 한정되었던 마쓰시다의 사업은 자전거램프 사업을 통해 비약적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된다. 자전거 보급이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에 불편해 했는데 당시에 사용한 촛불램프는 바람이 불면 금방 꺼지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여 고노스케는 자전거 램프를 개발하여 양산함으로써 마쓰시다의 양적성장을 시현하게 된다.

 

■ 첫 경영위기, 감원이 아닌 고용유지를 통한 재기!
 이러한 마쓰시타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1929년 10월, 블랙먼데이와 함께 일본에서 세계공황의 여파가 밀려 왔다. 1929년 11월, 12월은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고 재고가 급증하여 창고에 넣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영업부장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종업원 수를 줄이고 사업을 축소해야 합니다.”라고 고노스케에게 보고했다.
이에 고노스케는 “경기가 좋지 않고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럴 때 마다 감원하고 생산을 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라고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내일부터 전원 반일근무, 오후에는 전 직원의 힘을 합쳐 재고를 줄여보기로 하자. 그러고도 안 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전하자 전전긍긍하던 종업원들은 더욱더 일에 몰입했으며 창고 가득한 재고도 남김없이 팔았다고 전해진다.


훗날에 밝힌 본 사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놀랍게도 명료하다. 종업원을 해고하면 임금으로 지출되는 돈을 당장은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종업원이 줄어 판매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재고를 싸게 팔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손실은 불가피하다. 결국 이 손실은 임금절약으로 얻은 비용을 상쇄할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고용을 보장하여 종업원의 사기를 올려주고 재고를 정가에 처리한다면 회사와 종업원 모두 이익이 될 것으로 고노스케는 생각한 것이다.

 

■ 아타미 회동, 위기를 기회로 만든 극적인 반전
고노스케 회장의 일화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아타미 회동’이다. 마쓰시타는 전후 불황을 딛고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60년대 들어 다시 엄습한 불황과 함께 재차 위기를 맞는다.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고노스케는 64년 7월, 전국대리점 사장 간담회를 아타미에서 개최하였고 전체회의를 직접 주재하게 되었다. 고노스케는 개장에 앞서 “오늘 이야기는 전부 비밀에 부치겠으니 사양 말고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회의장의 분위기를 잡았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대리점 측에서 봇물 터진 듯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고노스케는 마쓰시타에 대한 불만을 경청한 후에 ‘목숨을 걸고 일한 적이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회사에 불만을 표시하는가?’ 등의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일종의 도발이었다. 대리점의 적자 등으로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있는 대리점주를 앞두고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회의는 10시간 넘어 다음 날 아침까지 팽팽한 긴장 속에 계속되었다.

다음날 정오경 에 드디어 고노스케가 정중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는 모두 마쓰시타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마스시타의 성장은 전부 여러분의 덕입니다.” 그는 울먹이며 “지금부터는 새로운 각오로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이 마음 놓고 경영을 하실 수 있는지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년간 장사를 통해 습득한 쇼맨십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 한번으로 대리점들의 불만을 모두 잠재울 수 있었고, 대리점주와의 계속되었던 갈등관계도 청산할 수 있었다. 이 일화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말할 때 전설로도 회자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그는 회담직후에 영업본부장 직무를 대행하면서 영업을 직접 지휘했고 신판매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로써 회담 3년 후에는 전 대리점이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야말로 경영의 기적을 낳은 것이다.

 

■ 조직과 인재운영의 혁신 - 일본 최초의 사업부제 도입
 마쓰시타 전기는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경영자의 감성이 구석구석에까지 미치는 적당한 크기의 기업’을 이상으로 품고 있던 그는 일본의 경영사상 획기적인 ‘사업부제’를 탄생시켰다. 1933년 마쓰시타는 사업부문을 세 개로 나누고 각 부문의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는 사업차원의 고려도 있었지만, 사업부제를 통해 언제라도 자신의 일을 맡길 수 있는 경영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노스케는 완벽한 권력을 그들에게 위양하지 않고, 최종결정은 항상 고노스케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한다. 또한 고노스케는 ‘경리사원제도’라는 별도의 인력군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은 입사면접 때부터 별도의 경로로 채용되어 고노스케의 직속부대로 각 사업부에 배치되었다.

사업시책의 입안은 사업부장이 했으나 경리사원은 그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업부장의 권한을 견제했다. 이는 힘의 균형을 적절히 안배하고, 경리사원 제도를 통해 사내 핵심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려고 한 것으로, 고노스케의 인재관리에 대한 의도도 엿볼 수 있다.

 

■ 마쓰시타의 확고한 인재관
평소 고노스케는 ‘우수한 부하를 얻고 싶으면 강력한 방법으로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 사람들이 획일적이라고 평한 마쓰시타 전기이지만 고노스케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명령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일하기보다는 경영의식을 발휘하여 경영의 요령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계속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사원은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주어야만 한다는 강한 결의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두고 고노스케는 사원교육에 특히 힘을 쏟았다. 반면, 고노스케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회사를 말아먹고 국가를 망치게 하니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마쓰시타에 들어올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나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특성을 우려한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행동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무용지물이라는 그의 신념과 일맥상통한다. 마쓰시타는 항상 ‘회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경영을 할 것인가’하는 점에 대해서 기본이 확보한 사고를 갖도록 강조했다.

그가 불안하게 여긴 것은 바로, 회사의 성장에 따라 조직의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생각이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유에 대한 욕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사상 중 하나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저서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책 제목은 바로 ‘인간을 생각한다.’이다. 그의 대표작이 ‘경영을 생각한다.’가 아니라 ‘인간을 생각한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경영자체를 인간으로 생각했으며 회사의 존재목적과 철학을 공유한 인간이야 말로 경영의 핵심임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끝으로, 인재중심의 철학을 주장한 고노스케는 항상 사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마쓰시타는 어떤 회사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마쓰시타는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기제품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라고 말이다.
 
그는 기업은 사회를 지탱하는 공기(公器)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기업처럼 자본효율이나 배당성향도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결코 주된 것이 될 수 없으며 종속적이라고 강조했다. 재무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인적자원임을 일깨워 준 것이다.

 
출처 :alpaco 알파코 메일링 리스트- 동행이인-기타 야스토시/박현석/배노조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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