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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만 잘 부려도 글이 살아나 생동감이 넘치고 읽는 이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라틴어 계통의 말에서는 인터네이션(어조)으로 강조점을 드러내지만 우리말에서는 그 역할을 토씨가 한다. 

바로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낯선 블로그를 찾았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하고서 토씨를 고쳐주고 나왔다. ‘흘러간 시간을 가져올 수가 없어도, 다가오는 시간을 아껴 쓰면....’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는데 착상이 좋아서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첫 연의 토씨가 어색했다. ‘흘러간 시간은 가져올 수가 없어도’라고 하거나 ‘흘러간 시간을 가져올 수는 없어도’로 하면 흘러간 시간의 덧없음이 한층 되살아난다. 단지 ‘을’을 ‘은’으로 또는 ‘가’를 ‘는’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그 어감은 사뭇 다르다. 이것이 토씨가 지니고 있는 신비한 힘이다. 

우리는 좋은 소재를 재료로 해서 확실한 주어로 칼질을 하고 딱 알맞은 단어로 양념을 하면 맛있는 요리가 될 것으로 알지만, 그렇게 해도 특유한 맛과 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소위 우러나오는 맛을 내기 위해서는 토씨라는 간이 잘 맞아야 한다. 


ⓒShutterstock


다시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부패와의 전쟁에 나섰다.’와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에 나섰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가?  당연히 후자의 경우다. 토씨 ‘은’과 ‘가’의 차이다. ‘곡식이 익어 가는데 거둘자 가 없다.’와 ‘곡식은 익어 가는데 거둘 자가 없다.’는 어느 쪽이 더 절박한가. 또 ‘황금들판에 가을이 무르익고’와 ‘황금들판에는 가을이 무르익고’의 어감을 감상해보시라. 

통상적으로 주어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할 때는 ‘이(가)’의 토씨를 붙이는 것이 ‘은(는)’을 붙이는 것보다 통렬하다. 신문의 사건기사를 읽어보면 대개 첫 문장(리드라고 함)의 주어에 붙는 토씨는 ‘이(가)’를 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씨는 문장의 꼴과 뉘앙스를 크게 바꾸는 역할도 한다. ‘나는 밥을 먹었다.’  ‘나도 밥을 먹었다.’  ‘나도 밥은 먹는다.’는 토씨만 다를 뿐인데 각각 그 뉘앙스가 다르다.  이처럼 토씨의 쓰임새를  잘 이용하면 죽었던 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토씨는 결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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