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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shannon. 2009. 11. 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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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52 문학작품 속의 해학과 정겹고 맛갈스러운 표현들을 모은 책이다. 적게는 한장반에서 많게는 4,5장 정도 작품의 일부가 수록되어있다.

성석제씨가 '문장은 이렇게 써야한다'라는 식으로 설명해주는 책인 줄 알고 구매하였는데, 막상 펼쳐보니 발췌한 것뿐이여서 살짝 실망했다. 그러나 웬걸.

읽으면 읽을 수록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글도 있었고, 문장이 아닌 내용에서 또렷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작품들도 많았다.



  1. 제일 첫장에 나오는 이문구 作의 '우리 동네 김씨'

책을 펼쳐든 순간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요즈음 인터넷 게시판 등지에서 쓰이는 '소리나는 대로 쓰기' 단어인 줄 알고 조금 놀랬다.

  '저런 싸가지 웂는 늠으 색긔 .... 야늠아, 말이 말같잖여? '
   '야늠아, 너 시방 워디서 담배 피는겨? 너는 또 워디 가네? 저늠의 색긔들 ... 그래두 안 꺼? 건방진 늠 같으니라구. 너 깨금말 양시환 아들이지? 올봄에 고등핵교 졸읍헌 늠 아녀? 너지? 건방머리 시여터진 늠 같으니라구.'

충청도 사투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적은 글자들. 재미있기 그지없다. 솔직하게 감정을 모두 다 적은 문장들.
부면장이 동네 반상회에 나와서 면장이 올 때까지 사람들한테 퇴비를 일찍해라, 거기있는 어린 놈들 말 좀 들어라 등등 잔소리를 한다. 문장 곳곳에는 애도 타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고, 오랫만에 앞에나온 김에 할말 다 하고 싶은 부면장의 심정이 느껴진다. 내가 충청도에서 자라서 그런지 마치 어머니가 옆에서 잔소리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2.  김유정 作 봄·봄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김유정의 봄봄.  마름의 머슴이다가 데릴사위로 일하는 어린 사위와 장인과의 신명나는 싸움을 그린 장면. 싸우면서도 점순이가 나를 도와주겠지, 아직 합방을 안해본 데릴사위는 자기 색시가 될 점순이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싸우면서도 점순이가 나를 위해 어떻게 나오려나 궁금해 미친다. 그러면서 장인한테 맞아보기도하고 때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ㅎㅎ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 데릴사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너무 신기하다. 요즘에도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니 내 머릿속에서는 재벌집 사위를 목표로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남자의 연애이야기를 그린 TV드라마가 떠오를 뿐이다.


3. 현진 스님 作 방귀수좌

방귀수좌.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이신데, 방귀를 너무 많이뀌셔서 제목이 방귀수좌이다. 방귀뀌는 소리가 유난히 크고 냄새나고 갑자기 내는 소리로 사람들을 놀라게해서 방귀수자가 끼는 방귀를 일명 '케첩방귀'라 한다. 스님들 공부에 방해가 되고 수련하다 깜짝깜짝 놀래고, 냄새도 나고=_= 그래서 어느 높은 스님이 '나가서 뀌고 오든지, 아니면 조심해서 소리를 내시오' 라고 말하셨다. 이미 자유롭게 끼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항상 조심하는데 어느 점심시간에 어디선가 '뽀옹' 하는 방귀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은 그가 뀐게 아니라 다른 스님이 낀것인데, 순간 사람들은 그를 보고, 그는 식은땀이흐른다...
 
 - 중학교 입학 전, 성문 기초영어와 한학년 수학은 미리 해놔야 될것이라는 말에 학원을 다닌적이 있다. 3개월 정도 짧게 다녔었는데, 거기에 공부 잘하고 똑똑한 김씨 성을 가진 남자애가 다녔었다. 다른 학교애라서 그 아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똑똑하고 성격도 좋아서 선생님들이 말걸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얘가 방귀를 자주 끼기 시작하였다. 크게는 아니지만 수학, 과학 문제를 푸는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시간에는 바로 티가 났다. 그러던 어느날 수학선생님으로 들어오시던 부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귀를 나가서 뀌어라"

애들은 키킥 대면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몰래끼는 방귀가 공론화 되는 순간이였다. 얼굴이 빨개진 그 아이는 웃으면서 '한시간에 한번만 뀔게요' 라고 받아쳤다. 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원장 선생의 놀림은 더욱 심해져 갔고, 우리는 그 식상한 유머에 더이상 웃지 않았다.

 '애드립을 칠려면 제대로 치던가'
 '무슨 수업시간에 이상한 소리만 해'

사실 우리들은 부원장 선생님이 자율학습시간에 고함을 치면서 너무 압박해서 불만이 있었다. 그른데다 수업시간에 친구를 너무 괴롭히는거 같아 그냥 대꾸 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아이가 '뿌웅'하는 소리를 내며 방귀를 뀌었다. 나는 그것이 처음듣는 소리였다. 남한테 관심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귀가 어두웠던 나는 그 방귀소리를 듣고 크게 웃고만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부원장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너 내가 나가서 뀌라고했지!!' 라고 소리를 지르는게 아닌가.

그 아이는 겸연쩍은 표정을 짖다가도,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보이려고 구겨진 얼굴을 열심히 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아 곧 심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오버한 선생님이 이해가 안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아이는 더이상 학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우린 학원 부원장을 방귀뀌었다고 애 학원에서 내쫒은 '못난이 부원장'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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