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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7층

Sumin Lim 2010. 7. 1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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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창문으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시소리와 음식냄새가 나면 엄마가 준비해놓은 음식이 있는 집에 가고싶다.

혼자 나와 산지 오래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도시가 낯선가 보다.

대전. 산자락에 위치한 아파트로 대전시내가 다 보이는 조용하고 심심한 동네에서 살았던 나로써는 집에서 풀냄새를 못맡으면서 자면 답답하다.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1층은 상가. 한층에 30가구, 2층부터 8층이니 총210가구.
오피스텔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ㅁ'으로 생겼다. 가운데 뻥 뚫린 구조덕분에 다행히 어느 집에서나 아침에 문을 열면 햇빛을 볼 수 있다. 비가 오는지, 날이 얼마나 어둡고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문을 열면 알수 있어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아침 출근길에는 맑은 하늘이 날 반겨주고, 퇴근 후 저녁에는 도시냄새가 날 반겨준다.
그것도 낯설은 나는 얼른 집에 들어와 낮시간 동안 데워진 나의 방을 시원하게 식히려
창문을 열었다.

문을 열으며 확인한다. 오늘은 지난 주말 새벽에 들렸던 아랫집 부부싸움이 안들리는지,  위집이 이불을 또 털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활짝 여는 만큼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들어오는지..

오늘은 월요일 밤.
집 밑에 주차장에서는 중고등학생이나 젊은 대학생아이들이 간혹 싸움을 한다. 그리고 오늘은 대학생 커플이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하고 나서도 여자아이의 억울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창문으로 들어온다. 지난번처럼 여자를 마구 때리는 못난 남자애랑 싸우는 경우는 아닌지, 여자가 왜이렇게 억울하게 계속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그랬더니 남자는 계속 듣기만하더니 도망가버렸다. 이리오라고 와서 더 얘기해보라는 여자아이의 말을 무시한채.

이제 싸움구경은 끝났으니 어디로 시선을 향해볼까.
고개를 내놓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좌측 대각선에 위치한 또다른 오피스텔을 바라보았다. 바로 붙어 있어 6층에 위치한 불켜진 3집이 들어왔다. 사람들 하나같이 모두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길래 자세히 보았더니 마우스를 잡은 사람손이였다. 뭐하는 걸까, 문지르는 마우스 위에 놓인 모니터에는 많이 보던 스타가 있었다. 저 집은 퇴근 후 게임하는 남자. 그 옆옆집. 사람은 안보이지만 매우 지저분한 책상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마우스 클릭을 열심히 하는 자세. 자세히 보면 책상에 무엇인가가 많은데 나름 정리되어 있었다.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평소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쳐 놓은 집들이 많았다.  그 다음 6층 5층 모두 볼 수 있지만 밝은 만큼 나도 보이겠다 싶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빛도 안들어오는 주차장 한 구석에는 빨간 불과 핸드폰 빛이 보였다.
그들은 왜 구석에서 담배를 피울까.
시원한 곳도 많은데 자동차와 건물로 사방이 둘러싸인 구석에서 남자 둘이 숨어 이야기하는 것이 위에서 보였다. 가만보면 소근소근 비밀이야기 하는 것은 남녀구분이 없는 것 같다.

에어콘은 틀어도 시원하지도 않다.  우리집 것만 그런지 정말 궁금한데, 문연 김에 좌우를 살펴보았다. 내 아래로 6층부터 1층까지 문연 집은 다섯집, 내 위로 8층도 열어놓았고, 얼마전 이사온 오른쪽 집은 아직 안들어왔는지 창문을 닫아 놓았다. 대각선도 보고 이렇게 저렇게 보니 초복인데도 사람들이 문열어놓고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처럼 에어콘이 고장난건지, 아니면 아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에어콘 수리공이 안와서 짜증나고 억울한 나는 다시 마음을 쓰다듬어 본다.

생리통에 휴가내고 가지 않으려던 회사에서 오늘 일은 매우 잘 되었고 운이 좋은지 빠르게 처리가 되어 스트레스는 줄었다. 대신 다른 스트레스가 있는데 아직 풀 수 없다. 날이 갈수록 더 스트레스 받고 점심 먹고 난 뒤에는 울음이 자꾸 나왔다. 조금만 더 참아야 한다. 지금있는 팀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때문에 나오는 눈물이니까.
집에와서 다시금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낮에 있던 자신감은 어디에 있는지 되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지친걸까 오늘도 일찍 안자면 내일 힘들거 같다는 생각에 오늘 나름 즐거웠던 시간들을 찾아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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