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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남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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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책과 책 이외의 것들이 어떻게 정렬되어있나 살펴보았다. 오래된 책장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다양한 것들이 있다. 책을 꽃고 남은 공간에 놓인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은 그에 대해서 말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 두 남자의 공통점은 여러가지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오거나이즈의 진수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특징은 꼼꼼하면서도 완벽한 성격을 가진 것인데, 이들의 서재와 작업장은 그 점이 고대로 반영되어 있다. 혹여 누가 갑자기 무엇을 찾으려고 해도 금방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리정돈 되어있다. 그래서 더 들여다 보고 싶고, 더 머물러 있고 싶다.

둘째,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말이 아닌 책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정원 가꾸는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길레 이렇게 잘 가꿀 수 있는지. 취미로 시작했다고 하는 그는 사실은 그게 하고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해야되니까 시작한 것이라고 하였다. 부인은 집을 좋아했지만 정원을 가꾸는 것은 귀찮아했다. 삽이나 비료와 흙 등을 만지는 것을 거들떠도 안보았기 때문에 그는 정원을 가꾸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여러 서적을 보고 재료를 사다가 계절별로 따라하였다. 덕분에 수 십년째 알롤달록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다 쳐다볼만한 정원을 집 앞에 가지고 있다. 나는 이 같은 대답을 그의 서재에서 이미 들었었던 것 같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살짝 핑크빛과 녹색 등이 있는 알록달록한 색 표지의 책들이 있길레 이상한 책인 줄 알고 신나게 얼른 빼보았다. 그랬더니 gardening 이라는 글자들이 하나씩 있고 집앞에서 보았던 비슷한 구도의 꽃과 나무들이 사진으로 있었다. 아무도 정원을 가꾸지 않아서 그 스스로 훵하니 있던 땅을 보기좋게 가꾸었고, 침대가 부러져 새로운 침대가 필요할 때 스스로 목재를 사다가 잘라서 침대를 만들었다. 스스로 즐거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는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수고스러워도 보람을 느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 다른 이의 서재는 다음과 같다.
각 연도별로, 각 주제별로 파일꽃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A4용지 또는 얇은 잡지들이 놓여있는게 멀리서 보면 지저분하고 나중에는 섞여서 찾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파일꽃이를 하나씩 들여놓아 한 벽면이 온통 파란색의 파일꽃이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OOOO년도 OO회의'등과 같이 네이밍을 시간순, 주제별로 해놓았다. 그리고 책을 꽃고 남은 공간에는 장식품을 하나씩 놓았다. 이런 장식품들로 나는 그가 어느 나라를 여행했었는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를 심심치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생긴 돌하루방이 여러 개 놓인 것을 보면서 그가 제주도를 몇번 다녀왔는지 또는 제주도 여행이 그에게 얼마나 의미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빈 공간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가족사진과 교회에서 나눠준 기념품 같은 것은 그의 성실한 주말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빼먹을 수 없는 것 한가지로, 내눈이 가장 오랫동안 멈춰섰던 곳인 액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젊었을 적에 멋진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지금까지 그를 있게해준 도전정신과 패기가 그 때에 정말 존재했었는지 그의 눈매, 입술, 그리고 눈빛에서 하나씩 확인하려고 유심히 쳐다본다.

서재만 좋은 것이 아니다. 세번째 특징이 남아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가정이 있고 자식 뿐만 아니라 손주, 손녀까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할아버지이다. 왜 하필 할아버지냐고 묻는다면 다음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우선 내가 반할만한 멋진 인품과 지혜로움, 그리고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이 공간에 나란히 앉아 있는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눌 이야기 거리도 많다. 나의 호기심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1,2년도 아닌 적어도 15년 이상 된 서재에서는 꽃혀있는 책과 문서파일만 가지고도 2,3시간을 족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가 나온다. 그의 지식의 폭을 이미 서재에서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더 편하게 물어볼 수 있다. 그리고 젊었을 적 사진을 가르키며 이들의 젊었을 적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멋진 지금 모습이 더욱 멋지게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들이자 내가 머물로 있고 싶은 이 공간에 단 둘이 오래 같이 있으면 나는 행복하며,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얻는 것이 많다. 아직 미혼인 여자가 세상을 살만큼 살았고 즐겁게 뒤돌아보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안전한 남자와 함께 있는데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나이든 사람이 멋있게 느껴질 때, 나는 이들의 멋졌을 것 같은 청년시절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면서 이 공간에 나와 마주앉거나 나란히 앉아서 나의 말을 귀기울여주고 나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즐거운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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